상상. 새 별명은 상상으로 정했다.
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니까.


유년시절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이 두 권 있다. <나의 라임 오렌지나무>와 <앤>이다.

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, 꽤 어렸을 적, 지하실 방 한켠에서 그림도 없고 글씨도 작은 동서문화사 판 <앤>을 정신없이 읽었다. 너무 어렸었기 때문에 처음 1권을 읽는 데에는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. 그 이후론 읽는 속도가 빨라져서,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에 시리즈의 끝인 12권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. 고아였지만 앤은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었고, 그래서 반짝반짝 빛났다. 나는 앤을 닮고 싶었다.

<앤>을 다 읽고 나서, 마찬가지로 책장 구석에 박혀 있던 <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>를 읽었다. 밍기뉴와 둘만의 대화를 나누는 제제. 제제도 가난했다. 하지만 제제에겐 현실에서 떠나 아름답게 날아갈 수 있는 상상의 세계가 없었다. 제제는 어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, 아버지에게서는 오히려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을 오해받고 두들겨 맞기까지 한다. 그런 제제에게 세상에서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 준 뽀르뚜가는 죽는다. 제제는 나이에 비해 너무 일찍 어른이 된다. 아름다움도 환상도 없는 어른의 세계로 팽개쳐진다. 그 세계에는 밍기뉴도 들어올 수가 없다. 

처절한 현실.. 가난과 외로움, 빗나가는 마음..  그리고 제제의 아픔. 나는 제제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고 얼마나 아플지를 지금보다 그 때 더 깊이 알았던 것 같다. <나의 라임 오렌지나무>를 읽으면서 나는 매를 맞은 것처럼 서럽게 울었다. '나는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...' 나는 제제에게서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. 상상력의 화신인 앤을 동경했지만, 사실 나는 제제와 더 닮았었다. 납처럼 무겁고 아이에게도 예외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. 예민한 아이에겐 더더욱. 현실은 내게서 일찌감치 상상력을 빼앗아갔던 것이다. 그래서 나는 앤이 될 수 없었다.

커가면서도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. 외로웠고, 상상을 잘 하지 못 했다.
‘사람은 거북이처럼 자신의 안으로 파고들어가지 않으면 안 돼’ 라는 데미안의 말처럼, 나는 내 안으로만 파고들었다. 세상보단 내가 누군지에 더 관심이 많았고, 일기를 쓰며 나를 찾아내려고 했다.

대학교에 가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(그리고 훨씬 더 많은) 사람들과 다른 관계, 다른 이야기, 다른 환경을 만나게 되었다.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사람들, 또 다른 관계, 또 다른 이야기, 또 다른 환경을 만났다.

그 사소한 계기들이 다 무엇이었을까?
나는 1도, 1도, 또 1도씩 천천히 움직여 어린시절의 나로부터 벗어났다.

지금은 생각한다. ‘자신의 안으로 파고들어가지 않으면 안 돼’ 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. 사람은 화석처럼 가만히 있다가 발굴되는 것이 아니라 나무처럼 밖으로 뻗어나가면서 안을 계속 만들어가는 거니까.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는 것은 사실 바깥으로 뻗어가면서 내가 어떻게 얼마나 뻗어질 수 있는지 상상하고 실험해 보는 걸 말하는 거라고.

그리고 나는 상상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. 


2015.6.4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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